외교사:냉전사:1948.1949.베를린.봉쇄

1948-1949 베를린 봉쇄

  • 독일 중심의 중부유럽: 재래식 군사력과 단거리 핵무기가 직접 대치하던 곳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분할점령 결정1)
    • 점령 4개국(미, 영, 프, 소)은 독일과의 평화조약이 체결될 때 까지 잠정적으로 베를린을 공동 관할하기로 함
  • 소련은 베를린~독일서부지역 사이의 항공로들을 공식적으로 인정. 비공식적으로 철도, 도로를 통한 물자운반을 묵인
  • 서방이 서방 점령지역에
    • 마샬플랜 참가 허용
    • 독일연방공화국 조직 시작
    • 통화개혁안 발표: 독일 마르크화 통용
    • 독일 부흥을 위한 서부 독일정부(독일연방공화국) 조직
    • [국제관계사], 박건영

      미국은 서부 독일을 유럽에서의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엔진으로 만들어 독일이 다시 과거의 경제블록, 즉 자력갱생의 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고, 다른 한편 미국의 자본과 상품을 흡수하는 해외 경제 거점의 역할을 하도록 할 방침이었다.

  • 소련의 대응
    • 서방의 독일 분열조치2)라 비난
    • 새 화폐를 동부 독일, 동베를린에 도입
  • 서독에서 단행된 화폐개혁에 대해 “서방이 독일 독립구상을 포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베를린을 미래의 통일독일의 수도로 남겨둘 수 없다”며 베를린에 대한 지상교통 및 물자전력 공급을 전면 봉쇄
  • 미국은 베를린 봉쇄를 미국측의 베를린에 대한 의지(commitment)를 약화시키기 위한 시도로 받아들임
  • 베를린에 공수(airlift)작전3)실시
    • 베를린 지역에 군사적 긴장 심화
    • 소련은 서방측 항공기에 대한 적대적 공격행위가 곧 전쟁을 불어일으킬 것이라 판단, 심각한 차단 시도를 하지 않음
  • 동구 공산국들에 대한 경제제재 실시
  • 8월부터 미소협상 시작, 결국 1949.5 소련이 봉쇄 해제
  • 소련의 정치적 패배. 미국 억지정책의 성공
  • 독일국민의 대소련 여론 급격히 악화
  • 소련의 의도와는 달리 서부 독일정부의 수립을 늦추는 데 실패하고 오히려 가속화했으며, 미국으로 하여금 서부유럽의 방위를 강화, 유럽 부흥계획4)을 확대하게끔 함
  • “철의 장막”의 영구화
  • 1949.5 미국 점령지역이 서독으로 주권 이양됨
  • 1949.10 소련 점령지역에서 동독 수립
  • 베를린: 공동 통제지역으로 남음

소련의 인식

  • 1949 독일지역에 대한 점령이 일방적으로 종식됨
  • 동베를린을 포함하는 점령지역 전체에 대한 주권을 동독 정부에 이양함

미국의 인식

  • 서베를린을 포함한 베를린은 4개국의 공동 점령지
  • 베를린 점령 종식은 4개국의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
  • 서베를린은 서독의 일부가 아님. 서독 헌법과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free city.
  • 동베를린도 free city이지만, 동독의 일부이자 동독의 수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베를린의 특수 지위가 서베를린에만 적용됨



3)
비행기로 생필품 등 대규모의 물자를 수송한 작전
4)
마샬플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