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사:1_2차_세계대전:1.제1차_세계대전:발칸_문제

발칸 위기

[20년의 위기], E.H.Carr

1870년 이후 민족건설의 작업은 거의 완성된 듯이 보였다. 민족주의는 이제 “발칸반도”의 문제가 되었고, “발칸반도”가 의미하였던 모든 불길한 징조를 포함하게 되었다.

  • 러시아: 제국적, 전략적, 경제적 이익 + 범슬라브주의
    • 범슬라브주의: 세르비아가 남슬라브족, 범슬라브주의의 핵심
    • 전략적 이익: 세르비아 보전이 보스포러스 해협, 다다넬스 통행 문제와 직결
    • 우방국: 프랑스, 영국 1894 러불동맹, 1907 영러협상
  • 오스트리아-헝가리: 발칸에 남슬라브인 다수 거주. 이에대한 통제권을 공고히 하고자 함
  • 청년터키당 혁명: 레발협정1)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철도2)건설 계획에 마케도니아 주둔 오스만터키군 장교들이 반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합병 결정

  • 오스만터키가 보스니아 지역에 대한 주권을 더 강화하기 전에 선제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
  • 러시아의 영향력 확산 우려, 다민족국가로서 민족주의의 도전을 한꺼번에 극복하는 수단
  • 오스만터키의 약화, 혼란을 이용하여 기존의 세력구도3)를 견고히 하기 위함

열강의 반응

  • 러시아: 격분, 국제회의 소집 제안
  •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강력 지지
  • 프랑스: 러시아 지지하지 않음 - 러시아가 합병 인정
  • 1878 베를린 조약의 수정을 의미
  • 세르비아의 반 오-헝세력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에는 남슬라브계 세르비아인이 다수
  • 삼국협상의 강화: 러시아가 독일에 대한 힘의 열세 자각, 영국과 프랑스에 더 접근
  • 외교적 고립을 두려워한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밀착
  • 발칸의 현상유지에 동의한 이탈리아의 삼국동맹 이탈4)
  • 이후 1914 사라에보 사건의 배경이 됨
  • 오스만터키의 쇠락
  • 발칸 리그(세르비아-몬테네그로-그리스-불가리아) vs 오스만 터키
  • 오스만 터키 패배, 1913 런던 회의로 종식
  • 터키: 에노스-미디야 선 서부의 모든 유럽지역과 크레타 섬 포기
  • 알바니아, 에게해 섬 문제는 열강의 결정에 맡겨짐
  • 독-오: 범슬라브주의운동을 러시아가 조종하고 있다는 의심, 우려 확산
  • 러-오 갈등 심화
  • 전리품 배분 갈등: 제2차 발칸전쟁으로 이어짐

세르비아의 불만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빼앗김, 아드리아해 진출 좌절
  • 불가리아가 약속을 어기고 마케도니아 할양하지 않음
  • 세르비아-그리스 반불가리아 동맹 체결

불가리아의 현상타파국가화

  • 불가리아가 세르비아, 그리스 공격
  • 루마니아, 오스만터키가 세르비아편으로 참전: 불가리아 굴복

부카레스트조약

  • 터키: 아드리아노플 재획득
  • 루마니아: 남부 도브루자 획득
  • 불가리아: 마케도니아로부터 축출
  • 그리스: 카발라 이양
  • 불가리아 영토 축소, 세르비아가 발칸의 강자가 됨
  • 불가리아: 반세르비아, 반러시아5)
    •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불가리아가 오-헝에 가담
  • 러시아: 발칸지역에서 세르비아만이 동맹국이 됨
    • 1914년 오-헝의 세르비아 위협: 세르비아 보호 or 발칸 전체의 포기 선택에 놓이게 됨



1)
마케도니아 분할로 이어질 것을 우려
2)
세르비아 노비바자르 ~ 보스니아 ~ 그리스 살로니카 연결: 발칸반도 서쪽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세력권 아래 놓이게 됨
3)
1878 베를린회의 이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행정지배
4)
이후 1911 오스만터키령 트리폴리 무력 점령
5)
러시아가 마케도니아 분할 관련 불가리아 편에 서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