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담
- 전쟁수행전략 조율, 전후질서 구상 협의하기 위한 연합국의 일련의 수뇌회담
1941 대서양헌장
ko: 대서양 헌장
원문보기: Atlantic Charter #Content and analysis
- 브레튼우즈 체제의 출발점이 됨
- 제4조: 모든 국가들이 무역과 천연자원을 획득하는 데 균등한 대우를 받는다.
- 제5조: 노동기준, 경제발전, 사회보장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국가들 간의 최대한의 경제협력을 촉진한다.
1943 카이로회담
- 전후 아시아 질서 구축과정에 중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임을 확인
- 1894년 이래 일본이 침탈한 지역의 환원을 약속
- 만주, 타이완, 펑후 열도를 중화민국에 환원
- “3대 강국은 한국 인민들이 노예화된 사실을 유념하면서 적당한 시점에(in due course) 한국이 자유로운 독립국이 될 것임”을 확인
- 장제스: 윤봉길 의거 찬탄
- 정상들 타협3) 결과 한국 조항 포함하되 독립 시기는 못박지 않음
-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압박하는 데 동의
1943 테헤란회담
- 스탈린: 제2전선 개방의 지연 문제 제기
- 처칠, 루즈벨트: 1944.5에 제2전선 개방하겠다 약속
- 1944.6 노르망디상륙작전으로 이행
1944 브레튼우즈 UN통화금융회의
- 2차대전 발발이 세계공황과 연관되어있다는 문제의식
- 전후 국제통화운용 제도 합의
-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창설
-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본위제, 간접적 형태의 금본위제도4)
1945 얄타회담
1945 포츠담회담
- 루즈벨트 사망, 트루먼이 승계
- 서방-소련 동유럽 문제에 관한 불신으로 냉전적 기운이 감돌던 상태
- 소련: 공산화된 동유럽 국가들의 모든 정부를 서방이 인정해야 한다
- 미국: 결국 소련이 동유럽에 대해 완전한 종주권을 갖게 된다. 이는 미국의 이익과 전시합의에 배치된다.
- 이 회담 이후로 불신과 대결의 장으로 진입
- 소련: 일본과의 중립조약9)을 이유로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음
- 대일본 최후통첩
- 전범들 재판에 회부
- 독일 문제
- 독일의 완전 무장해제, 나치당 해체
-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4개국이 분할 점령하되, 경제적으로는 하나의 공동체로 남는다는 원칙에 합의
- 가까운 장래에는 독일 중앙정부를 수립하지 않음
- 서독기본법: 서독에 나치적 요소(행정, 제도 등) 일소
- 폴란드 영토 문제
- 동프로이센의 북북지역은 소련에 이양
- 단치히를 포함한 나머지 동 프로이센은 폴란드에 이양
1945 모스크바회담
내용
- 극동문제의 논의를 위해 회동
- 한국
- 민주정부 수립
- 미-소의 최장 5년의 신탁통치
-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현지의 민주적 정치조직과 협의하기로 결정
- 중국
- 내정간섭 회피
- 내란 종식의 필요성 확인
- 하나의 정부 하 민주적이며 통일된 하나의 중국 필요
- 소련군의 만주, 중국으로부터의 철수문제 논의
- 일본
- 극동위원회 구성: 11개국, 미국 최고사령관에 대한 자문 역할
- 일본을 미 점령군 산하에 둠
- UN원자력위원회: 원자력의 국제적 관리를 위한 계획 마련
함의
- 서방과 소련간의 일시적 타협에 불과하다는 평가
- 결국 냉전으로 이어짐
1951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ko: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태평양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한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평화조약
배경
- 중국 공산화 이후 미국의 불침항모, 군사기지로서의 일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짐
- 미 국무장관 덜레스(John Foster Dulles) ko:존 포스터 덜레스
- 전후 동북아 질서의 당사자들인 소련, 중공, 남북한을 배제하고 미일간 급하게 이뤄진 전후처리
내용
- 일본 문제의 완전한 탈안보화(desecuritization)
- 영토 조항: 일본의 식민지 포기
함의
- 패전 후 연합국 점령지에 불과했던 일본이 독립국의 지위를 회복
- 오늘날 동북아 도서 영토 문제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됨
- 독도, 센카쿠 열도, 북방 4개도 문제 등
- 이후 쿠바 미사일위기, 베트남전쟁 등 발발로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 실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