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015 외교 제1문
크림전쟁 이전
크림전쟁 이전 세력균형 구도
크림전쟁 이전 주요 열강들의 정책기저
크림전쟁 이후
크림전쟁 이후 세력균형구도 변화
크림전쟁 이후 각국의 정책기저 변화
토론
2015 외교 제1문
크림전쟁(1853 ~ 1856)이 국제정치사에서 갖는 의미를 논하시오.
1854-1856 크림전쟁
크림전쟁은 비엔나 체제의 종결, 식민지 확장 본격화, 중부유럽 통일국가의 등장, 러시아 현상타파화와 오스트리아 약화를 불러온 사건이었다.
크림전쟁 이전
크림전쟁 이전 세력균형 구도
1815 비엔나회의로 유럽 열강간 프랑스 재흥방지를 위한 협조체제를 구축
유럽협조체제가 와해될 조짐:
엑스-라-샤펠 회의 이후 프랑스도 열강의 일원으로 참가
스페인문제 해결을 위한 베로나회의 이후 영국은 보수/정통 연합으로부터 이탈하려는듯한 태도
크림전쟁 이전 주요 열강들의 정책기저
영국
러시아의 지속된 해협진출시도를 저지
코작 기병을 필두로 한 러시아의 육군력을 위협으로 인식
영-러간의 The Great Game
프랑스
나폴레옹 3세: 1848 2월혁명 이후 카톨릭 세력과 군부를 등에 업고, 쿠테타를 통해 집권
성지관할권 문제와 러시아 견제에 강경한 입장
이 문제에 국가적 위신과 더불어 나폴레옹 3세의 집권 정당성이 걸려 있기 때문
오스트리아
발칸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있음에도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 중 어느 쪽의 손도 잡지 않고 미온적, 중립적 태도를 유지
발칸에서 러시아의 압승이나 터키의 압승 모두 오스트리아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
아무런 국가이익이 관여되지 않은 프로이센, 적극적으로 영국, 프랑스 편에 가담한 사르디니아의 경우와 대비됨
러시아
전통적 해협진출전략, 정교회 보호국으로서의 이해관계
경제적 이권과 안전보장을 위해 해군력 확대를 통한 대외확장에 집착
슬라브 형제의 수장, 그리스 정교회 보호국을 자처
크림전쟁 이후
크림전쟁 이후 세력균형구도 변화
크림전쟁 이후 비엔나체제가 붕괴되었다고 평가됨
프랑스: 주요 열강의 일원으로서 크림전쟁을 수행
국가간 현상유지에 관한 합의의 붕괴
이탈리아, 독일 통일의 기반이 형성. 중부유럽의 강화 예상
크림전쟁 이후 각국의 정책기저 변화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남하 저지에 성공, 유럽 내 안정을 확보
이후 양국은 식민지 확장을 위한 암묵적 공조
ex) 애로호 사건을 빌미로 한
제2차 아편전쟁
러시아
파리강화회의에서 흑해 비무장/중립화가 결정. 남진의 욕구 좌절.
러시아에게 일종의 치욕. 이후 현상타파국가로 변모
1)
이후 유럽이 아닌 아시아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됨
오스트리아
중립적, 미온적 태도 유지로
영국/프랑스의 의구심
1848년 헝가리 반란 진압에 도움을 주었던 러시아의 원한
프로이센의 상대적 위상 강화
이탈리아 문제의 국제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대외정책 실패로 말미암아 독일 내 상대적 위상이 높아짐
올뮈츠 굴욕을 딛고 서서히 국력을 축적, 이후 독일 통일을 주도하는 국가로 대두
사르디니아
크림전쟁 참전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열강들의 호의를 얻고, 전투 경험을 쌓음.
이탈리아 통일과정에서 오스트리아를 꺾기 위해 프랑스와 손 잡는 일도 가능하게 함
1)
이후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패하자 철갑선 등장 등의 사정변경의 이유를 들어 흑해 비무장 조항을 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