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Weltpolitik)
비스마르크 퇴임 이후 빌헬름2세의 세계정책과 그로인한 영국-프랑스-러시아의 밀착
비스마르크 퇴임
- 비스마르크: 현상유지 vs 빌헬름 2세: 현상타파
- 1890.3 비스마르크 퇴임
1890.6 재보장조약의 연장 거부
- 복합적 동맹네트워크 관리 능력과 의지의 부재
- 영국과의 관계개선에 독러 재보장조약이 부담된다고 판단
- 러시아-프랑스는 결코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 믿음
- 러시아 목표: 흑해함대의 지중해 진출 ↔ 프랑스: 반대
- 프랑스 목표: 알자스 로렌 회복 ↔ 러시아: 독일과 전쟁을 감수할 이유 없음
러시아와 프랑스의 밀착
- 러시아: 독러재보장 폐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대러시아 모험주의 우려
- 프랑스: 오랜 외교적 고립으로 러시아와의 협력에 적극적
- 1891 화친조약(Entente Cordiale) 체결, 1894 동맹조약(Dual Alliance) 체결
- 독일: 프랑스, 러시아 양국에 포위됨. '2개 전선' 실현1)
쉴리펜 계획
- '2개 전선'의 위험성 부각: 군사자원을 양분하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게 됨
- 전쟁 발발시 동부전선은 수비, 주력부대가 네덜란드2),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북부를 급습, 승리한 후 동부전선에서 러시아를 패퇴시킨다
- 6주 이내에 프랑스를 군사적으로 굴복시켜야 함
- 1914 전쟁에서 쉴리펜 계획대로 실행했으나 기동성이 충분히 발휘하지 못함
- 극대화된 안보상호의존성, 동맹의존성(chain-ganging) 증대, 구조적 경직성
세계정책(Weltpolitik)
- 1894 카프리비 퇴진 이후 본격적 제국주의화
- 사회적 제국주의(social imperialism): 제국주의적 팽창이 국내 사회적 문제 해결에 유용한 수단이다
극동 진출
영국과의 건함경쟁
독일의 해군증강 정책
- 알프레드 마한, 티르피츠 제독에 영향받음.
- 해군주의자들(navalists): 방산기업인 + 해군장교, 군산복합체의 영향
- 제1 함대법(the First Fleet Act), 제2 함대법: 티르피츠의 해군 건설 노선. 빌헬름 2세가 공개적으로 지지
- 영국을 위협. 영국은 노급함 건조로 대응
- 영국과의 건함경쟁 시작
영국의 대응
- 독일의 위협에 더해 제2차 보어전쟁, 만주 문제, 인디아 안전보장문제
- 영광스러운 고립(the Splendid Isolation)노선 변경
- 영일동맹으로 일본에게 동아시아 문제(러시아 봉쇄)를 일임
- 빌헬름 2세: 독러재보장조약 파기 + 영국은 러시아 견제를 위해 영일동맹 체결 → 영국이 독일과 한 편이 될 것이라 예측함3)
- 프랑스와의 밀착
1904 영불협상
배경
- 1898 파쇼다 사건4):
-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국의 종단정책 vs 프랑스의 횡단정책의 충돌
- 이집트령 수단 남부 파쇼다에서 영국군과 프랑스 군 맞닥뜨림. 프랑스 철수로 위기 종식
- 대독일 공동전선을 위해 식민팽창을 자제한 것
- 영국-프랑스 간 식민지 확보 경쟁 중단
- 1899 보어전쟁: 영국 육군의 취약성 폭로됨
내용
- 군사동맹은 아님. 우호관계, 식민지 경쟁의 종식
- 프랑스의 동맹국인 러시아, 영국의 동맹국인 일본으로 인해 전쟁에 연루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
- 당시 러시아-일본은 식민지 세력범위의 의견조정중5)
- 영국은 이집트, 프랑스는 모로코에 대한 영향력을 가짐을 상호 인정
1905 제1차 모로코 위기
1911 제2차 모로코 위기
- 모로코에서 술탄에 저항하는 봉기 발생하자 프랑스가 군대 파견9)
- 빌헬름 2세: 독일 상인 보호를 구실로 아가디르에서 무력시위
- 영국: 독일이 프랑스 공격시 영국군 파병할 것을 선언
- 독일: 아프리카 식민지 약간 얻는 대가로 모로코에 대한 프랑스의 행정지배권 인정
- 유럽의 세력 구도가 독-오를 영-프-러가 둘러싸는 형태로 굳어짐
관련 기출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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