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외무 제3문
비스마르크의 대외정책을 독일통일 전과 후로 나누어서 설명하시오. (25점)
통일 이전: 현상타파 정책
현상타파 정책의 필요성
- 비스마르크가 취임하던 때 프로이센은 이미 군사적으로 강대국
- 통일을 이루기 위한 현상타파 정책
-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한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들의 호의적 중립이 필
- 통일 전쟁 수행 와중에 타국의 침략까지 대응하는 상황을 피해야 하기 때문
- ‘철혈정책’ 하에, 외부세력의 중립화 +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각각의 전쟁을 준비
현상타파 정책의 전개
- 당시 프로이센은 소독일주의를, 오스트리아는 대독일주의를 기반으로 한 통일 방안을 내세워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
- 올뮈츠 굴욕에서 밀려난 프로이센은 1853-1856년크림전쟁 시기 오스트리아의 대외정책 실패로 말미암아 힘을 축적
- 보오전쟁에 앞서
- 1863년 알벤스레벤 협정으로 러시아의 호의적 중립 확보
- 1865년 가슈타인 협정으로 오스트리아와의 동등한 지위를 확보
- 같은 해 베아리츠 회견에서 라인지방과 베네치아를 미끼로 프랑스의 중립 확보
- 1866년 이탈리아와의 동맹
- 프랑크푸르트 연방 의회에 대독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개편안을 제출, 보오전쟁에 돌입
- 보불전쟁에 앞서
- 베네데티 초안을 활용, 영국을 중립화
- 1870 엠스 전보사건으로 보불전쟁을 유발하여 승리
- 1871년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의 성립을 선포
통일 이후: 현상유지 정책
현상유지 정책의 필요성
- 더 이상의 확장을 함으로써 여타 열강들의 경계심을 사기보다는 영토 욕심을 내지 않고, 식민지도 갖지 않는 ‘만족한 독일’의 모습을 고수
- 중부유럽의 적당한 강화를 통해 프랑스와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하려는 영국의 이중장벽정책(Double Barrier)과도 부합
현상유지 정책 전개
- “비스마르크 보장체제”라 불리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동맹관계로 나타남
- 비스마르크 동맹체제
- 1879년 독오동맹(dual alliance)을 중심축으로
- 1881 독-오-러 3제협상
- 1882 독-오-이 3국동맹
- 1887 영국을 포함한 지중해협정
- 1887 러시아를 끌어들인 독-러 재보장조약으로 구성
토론